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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0 22:55



MOZART : Violin Sonata, K.304 - II. Tempo di minuetto




Arthur Grumiaux, violin

Clara Haskil, piano


1958







밤 11시 20분.

그 즈음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데

손등에 떨어지는 차가운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아, 비가 옵니다.

그리고 불현듯, 그 비에 어느 해 3월의 벚꽃이 공명합니다.





이른 새벽, 밤 새 일하고 녹초가 된 몸을 누이러 가는 길,

그 땐 귀에 음악을 꽂고 잘도 다녔었습니다.

숙소 가는 길의 벚나무에서는 이제야 꽃들이 피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벌써 지는 놈도 있었습니다.


몇 닢이 떨어지는데, 마침 눈 높이에서 하나 떨어집니다.

마치 누가 등을 떠민 것처럼, 그 꽃잎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봅니다.

그리고, 손등에 떨어지는 사뿐한 느낌에, 또 다시 떠밀리듯 눈을 돌리니

벚꽃잎 하나가 내려 앉았었습니다.





오늘 밤, 손 등의 빗방울이 나를 그 날로 불렀고,

그 날의 벚꽃잎은 나를 내내 지켜보게 했습니다.

비와 벚꽃이 나를 궤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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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23:45



J.S.BACH : Die Kunst der Fuge, BWV.1080 - Contrapunctus I




Juilliard Quartet


1987







1.

자신의 학원을 갖고 있지 않은 강사란, 사실 언제나 불안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밥 벌어 먹고 있는 학원에 눌러 앉은 지 5개월,

함께 하는 선생들도 동료들로 여겨지고, 데리고 있는 각다귀들도 제자 쯤으로 여겨질 무렵,

또 다시 학원을 옮겨야 하는 사정이 생겨버렸습니다.

연신 미안하다며 사정을 설명하는 원장의 이야기에, 익숙한 채하며 웃음을 흘려주고 돌아서자,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어젯밤 한 숨도 못자고 혼자서 뒤척였습니다...




2.

소통의 순간, 그러니까 나와 네가 하나가 된 것 처럼 여겨지는 순간,

나는, 마침내 존재가 그 목적지에 도달한 듯한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혀와 내 혀가 서로의 타액을 주고 받을 때,

내 성기가 마침내 너의 성기와 합치되는 순간의 기쁨은

소통의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일 텝니다.

나는 너의 동지가 되고, 너는 나의 친구가 되며,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 되고, 너와 나는 세계인이 됩니다.

아아, 이것이 행복입니다..




3.

그러나, 지난 날의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져 간 어느 왕조의 터 처럼,

가끔 붉었던 기억만을 돌이키는 서랍 속의 빨간 옷 처럼,

사정 후에 쏟아져 들어 오는 어떤 회한처럼,

그리고 돌아선 너의 등처럼,

마침내, 너는 내게서, 나는 네게서 튕겨지고 버림받는 순간이 오고야 맙니다.

그 수다스러웠던 소통의 순간은,

과연 진짜였던 겁니까..




4.

소통이란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같은 지평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같은 지평 위에서 같은 사유를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합니까.

어쩌면, 소통의 부재로 괴로운 나머지, 어떤 환각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네 자체가, 내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저 바깥의 어떤 것을, 다만 같이 바라 보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것을 소통이라고 착각한 채, 열광하고 기뻐했던 것은 아닙니까.

아니, 더 지독하게 말하자면, 소통 자체에 대한 열망으로,

하나되었다고, 우리는 스스로 속고, 또 속이고 있던 것은 아닙니까...




5.

나에게서, 그리고 너에게서 버림받은 나와 너는,

이제 침묵 속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늙은이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흔적만을 고통 속에서  돌이킵니다.




수다스러운 소통은, 침묵의 해석 앞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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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7 21:41



HAYDN : Sonata in G minor, Hob.XVI:44




Sviatoslav Richter


1987








1.

일요일 저녁, 어머니가 지어주신 따뜻한 저녁을 먹고는 티비 앞에 앉으니,

마침 청주 여자 교도소 내 제소자들에 관한 다큐가 방영중입니다.

늘상 보던 남성 죄수들과는 다른 그들의 모습에 흥미가 일어 보고 있자니,

13년째 복역 중인 어느 40세 무기수가, 13년만에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범적인 수용 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단 하루동안 부모님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여인은,

설레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갚을 길 없는 죄의식으로 부모님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역사가 보통 깊던가요..

어머니는 기쁨의 포옹으로 딸을 맞고, 딸 역시 기쁨의 울음으로 어머님을 안습니다.

그런데, 모녀의 수다스런 상봉을 애써 외면하는 아버지는 멀찍히, 말 없이 앉아 계십니다.

딸의 어색한 애교에도 내키지 않는 반응만을 보이는 아버지에게, 카메라가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내 탓이지요. 내가 잘못 키웠기 때문에 딸이 이렇게 된 걸,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딸도 죄스럽고, 어머니도 죄스럽고, 아버지도 죄스럽습니다...




2.

실은, 모처럼 어머니가 올라오셨습니다.

다 큰 아들들이 아직 제 갈 길을 못 가 여전히 뒷바라지 하느라, 환갑이 다 되가는 나이에도

반찬이니, 옷이니 바리바리 싸 들고 올라오신 어머니를 맞는 제 심정은,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죄송스럽습니다.

그래도, 애써 밝은 척 하며 함께 저녁을 먹고 나서 함께 티비를 보는데, 위의 여자 교도소 다큐입니다.

무기수 아버지의 인터뷰를 보시며 맞다, 맞다, 다 부모 탓이지 하시며 자괴감의 한 숨을 쉬시더니,

방송 내내 비치는 수도승 같은 죄수들의 생활을 보시다가 문득 되뇌이십니다.



"차라리, 나도 저기 들어가서, 아무 것도 생각 안하고 아무 욕심도 없이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3.

17년째 복역 중인 어느 무기수의 이야기가 또 흘러 나옵니다.

죄수들을 위한 식사를 담당하는 이 여인은, 방송 내내 활기차게 동료들을 체근하며 음식을 준비합니다.

다른 죄수들이 힘들어 할 때, 맏언니 노릇을 하며 기운도 복돋우고 따끔하게 혼도 내면서,

오래 복역한 관록을 내비치는 그녀지만, 오래 됐다고 상처가 아물리 만무합니다.

이제 20대 초반이 된 딸이, 결혼 문제 때문에 어머니를 찾아 면회왔던 이야기를 하며 쓴 웃음을 짓던 그녀는,

마침내 눈물을 터뜨립니다.



"..어떻게 하냐고 묻데요.. 진짜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죽었다고 해라, 그렇게 말 했어요.

 딸이 울며 일어납디다.. 나중에 전해 들었는데 결국 헤어졌다네요.."





4.

모세를 죽인 유대인들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나사렛의 남자는 스스로 십자가에 메달렸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더 이상 죄스럽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로 인해 더욱 헤어날 길 없는 죄의식 속으로 빠져들어, 죽는 날까지 회개에 온 삶을 바치도록 하는 것은 아닙니까.


교도소에서 판결받은 형량을 성실히 살고 나온다고, 그녀들의 죄의식이 사라지는 걸까요.

징역 살다 온 그들을, 우리는 용서합니까.

오히려, 그로 인해, 그들은 더욱 더 우리들 밖으로 밀려나고 소외되는 것은 아닙니까.


아들이, 지금부터 열심히 살아 못다한 효도를 다 한다고 해서, 부모님에 대한 가책을 지울 수 있을까요.

아들이 아무리 성공한다고 해서, 부모님들의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과연 사라질까요.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늙어가는 부모님의 흰 머리를 바라보며, 무덤을 붙잡고 통곡하게 하지는 않습니까.



그녀들은 죄스럽고, 그녀들의 가족 역시 죄스러우며, 나도 죄스럽고, 제 부모님도 죄스럽습니다.

우리의 죄의식은 서로를 물고 물어, 벗어날 길 없는 가책의 더미 속에서 헤메이게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죄스럽게 만드는 겁니까.

무엇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기는 커녕, 더욱 깊은 죄의식 속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까.





5.


어쩌면 우리는,

합리와 이성의 이름으로 우리가 세워 온 '법', 죄와 벌에 대한 그 편리한 규정의 겉모습에 속은 채,

영원히 우리에게 처벌이라는 부채 의식을 강요하는 법의 정체, 그 잔인성을 몰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무지, 그에게 내려진 형벌의 정체를 모른 채 벌을 받고 있는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 처럼 말입니다.


"저 사람은 판결문을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



비단 법 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뒤에서, 기쁨의 기회, 해방의 기회를 송두리째 빼앗긴 채,

제 어머니에게서 처럼, 차라리 삶을 온통 내 맡겨버리라며 유혹하는 어떤 기계의 모습을,

갚으려고 할 수록 더욱 무거워지는 죄의식을 강요하는 어떤 기계의 모습을,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히려, 내가 그 기계가 되어, 나와 내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쓸쓸한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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